새롭고 압도적인 성능, 그러나 여전히 아이패드 – 수다피플

아이폰과 맥북의 중간. 8년 전 아이패드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위치다. 당시 애플 CEO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과 노트북 사이의 중간 지대에 아이패드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스마트폰 화면이 커지면서 아이패드의 위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3.5인치 아이폰이 6.5인치까지 커지는 과정에서 화면 크기에 의존한 아이패드는 어중간한 경험을 제공했다. 스마트폰과 PC 사이에 눌려 아이패드에는 어중간하다는 평가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애플이 내놓은 답은 ‘아이패드 프로’다. 2015년 첫선을 보인 아이패드 프로 모델은 생산성 도구를 표방하며 성능을 높이고 ‘스마트 키보드’와 ‘애플펜슬’을 입력 장치로 추가했다. 애플은 중간이 아닌, 기존 PC의 대체가 아닌, 차세대 컴퓨터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아이패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애플은 여전히 스마트폰과 PC의 경계에서 태블릿의 존재 의미를 찾고 있다. 올해 출시된 ‘아이패드 프로 3세대’ 역시 이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 아이패드 프로 3세대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

“당신이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가능케 하는 마법의 유리판”

팀 쿡 애플 CEO는 지난 10월 신제품 공개 행사에서 이번 아이패드 프로를 마법의 유리판에 비유했다. 베젤과 홈버튼을 걷어내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완성했다는 자신감이다. 그만큼 새로운 아이패드 프로의 디자인은 시선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다. 큰 화면에 적용된 베젤리스 디자인은 화면 몰입감을 극대화하고 미래적 경험을 제공한다. 제품 크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화면 크기는 키웠다. 기존 10.5인치 화면은 11인치로 커졌다. 부담스러운 크기였던 12.9인치 모델은 화면은 그대로 두고 부피를 25% 줄여 휴대성을 높였다. 측면 두께는 각각 5.9mm, 6.1mm로 얇아졌다. 모서리 부분은 둥글게 마감됐으며 디스플레이 역시 이에 맞춰 가장자리를 둥글게 다듬었다. 얼마 전까지 감탄을 자아냈던 내 아이패드 프로 10.5인치 모델은 순식간에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했다.

| (왼쪽부터) 아이패드 프로 10.5형, 11형, 12.9형

| 애플다운 디테일이다.

베젤리스 경험은 ‘페이스아이디’를 통해 완성된다. 새로운 아이패드 프로는 ‘아이폰X’ 시리즈 이후 시작된 애플의 새로운 디자인과 조작 체계를 이어받았다. 기존 홈버튼 ‘터치아이디’가 담당하던 문지기 역할은 얼굴 인식 기능 페이스아이디가 물려받았다. 제품 상단 베젤 중앙에 ‘트루뎁스 카메라’ 시스템을 탑재해 아이폰과 달리 노치 디자인 없이 페이스아이디를 구현했다. 홈버튼 조작은 아이폰과 마찬가지로 화면 하단의 막대를 쓸어올리는 스와이프 방식으로 대체됐다. 홈 화면으로 가는 조작과 자주 쓰는 앱을 담은 ‘독’을 불러오는 조작이 겹치기 때문에 적응이 필요하다는 점 빼고는 대체로 홈버튼 시절보다 편안하다. 홈버튼을 따닥 두 번 눌러 앱을 전환하는 것보다 좌우로 화면 하단을 쓸어넘기는 조작이 멀티태스킹에 더 쉽다.

아이패드에 처음 적용된 페이스아이디는 아이폰과는 조금 다르게 적용됐다. 제품을 바라보는 거리나 각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반 기술은 같지만, 아이패드에 맞게끔 데이터 학습을 달리해 알고리즘을 새로 적용했다. 이를 통해 제품을 가로로 놓든 거꾸로 놓든 방향에 상관없이 얼굴을 잘 인식한다. 아이폰의 경우 제품을 세로로 놓았을 때만 내 얼굴을 알아본다. 만약 제품을 잡는 과정에서 카메라를 손으로 가렸을 경우에는 이를 화면에 표시해 알려준다. 키보드를 사용할 경우 화면이 꺼진 상태에서 아무 키나 누르면 페이스아이디가 작동해 바로 빗장을 풀고 메인 화면으로 진입할 수도 있다. 이처럼 제품 특성에 맞춰 아이패드에서도 원활하게 페이스아이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 카메라를 가리면 화면에 해당 내용이 표시된다.

베젤리스 디자인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터치 입력 오류다. 베젤이 얇아져 제품을 손으로 쥘 때 화면을 잡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플은 2010년부터 팜리젝션 기능을 아이패드에 적용하고 있다. 실제 터치 동작과 제품을 잡는 동작을 구분해 터치 오작동을 막았다. 문제는 내구성이다. 아이패드 프로 3세대는 현재 일부 제품 알루미늄 부분이 살짝 구부러진 상태로 출고되는 경우가 발견돼 논란이 되고 있다. 애플은 제품 결함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압도적 성능, 개선된 확장성

성능은 프로 제품답게 압도적이다. 새롭게 탑재된 ‘A12X 바이오닉’ 칩은 8코어 CPU와 7코어 GPU로 구성됐다. 전 세대보다 단일 코어 성능이 35% 빨라졌고 멀티스레드 작업 중 최대 90%까지 성능이 높아졌다. 특히 최대 2배의 그래픽 성능을 낸다. 본래 하드웨어적으로 8코어로 구성된 GPU를 배터리 효율을 위해 7코어로 작동시키는데도 이 정도 성능을 낸다고 한다. 존 터너스 애플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사장은 “아이패드 프로는 X박스 원 S급 그래픽 성능을 훨씬 더 작은 크기에서 낸다”라고 말했다. 저장 공간은 1TB까지 늘렸다.

이러한 성능을 바탕으로 사진 및 영상 편집, 그래픽 앱 활용성을 높였다. 대용량 로우(RAW) 파일 사진이나 4K 영상을 편집할 때 버벅대지 않고 매끄럽게 잘 돌아갔다. 이 밖에 120Hz의 부드러운 화면 재생률, 주변 빛에 맞춰 자동으로 화면 색온도를 눈에 편하도록 조절해주는 ‘트루톤 디스플레이’와 보다 풍부한 색 영역을 표현해주는 ‘P3’ 등 최신 디스플레이 기술은 그대로 적용됐다.

‘아이폰5’부터 도입된 애플의 독자 규격 라이트닝 단자는 USB-C 타입으로 대체됐다. 이를 통해 전송 속도와 외부 확장성을 크게 높였다. USB-C가 적용된 아이패드 프로는 USB 3.1 2세대를 통한 고대역폭 전송을 지원하여 카메라나 악기와 최대 2배 속도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으며, 최대 5K까지 외부 디스플레이를 연결할 수 있다. USB-C를 활용해 아이패드 프로로 아이폰을 충전할 수도 있다. 기존 라이트닝 단자로는 로우(RAW) 파일 등 큰 용량의 카메라 사진을 옮기는 것도, 음악 등 다양한 창작 활동을 위한 액세서리를 연결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실제로 SD카드 리더 액세서리를 통해 전작 아이패드 프로 10.5와 이번 11인치 모델의 파일 전송 속도를 비교해봤다. 4240만 화소를 자랑하는 소니 ‘a7R2’의 무자비한 무압축 로우 파일은 사진 한 장당 90MB에 육박한다. 이러한 사진 145장, 약 14GB에 달하는 파일을 아이패드로 전송했을 때 10.5 모델은 약 3분 37초, 11 모델은 약 3분 4초가 걸렸다. 단자가 바뀐 만큼 기존 액세서리를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군더더기를 덜어낸 액세서리

애플펜슬, 스마트 키보드 등 기존 입력장치 액세서리도 개선됐다. 애플펜슬 2세대는 사용 편의성을 높였다. 터치 센서가 내장돼 있어, 두드리는 동작으로 브러시를 바꾸거나 지우개로 전환할 수 있다. 또 아이패드 프로에 자기 방식으로 부착되며 이때 페어링과 무선 충전이 이뤄진다. 애플펜슬을 라이트닝 단자에 꽂아서 부채 모양으로 충전하던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사라졌다. 입력 방식 메커니즘과 성능은 동일하다. 초당 240번 필기 궤적을 스캔해서 120Hz로 화면에 나타낸다. 필기감이 향상됐다고 느낀다면 기분 탓이다.

| 자기 방식으로 애플펜슬 무선 충전 및 페어링이 이뤄진다.

디자인적으로 손에 더 잘 감기게 설계되긴 했다. 보호 본능을 유발하는 유광 재질은 무광으로 바뀌었으며, 길이가 짧아져 무게중심이 안정감 있게 잡힌다. 전체적으로 이전 애플펜슬보다 군더더기를 줄인 모양새다. 고급진 모나미 볼펜 느낌이다. 애플은 추후 애플펜슬에 탑재된 센서를 활용해 이중 탭 이외의 다른 방식의 입력도 지원할 예정이다. 참고로 1세대 애플펜슬은 이번 아이패드 프로에서 쓸 수 없다.

| (왼쪽부터)1세대, 2세대 애플펜슬

스마트 키보드는 디자인을 개선해 사용 편의성을 높였다. 종이접기를 연상시키는 어려운 부착 방식에서 쉽고 간결한 방식으로 바뀌었다. 스마트 키보드를 연결해주는 스마트 커넥터가 제품 왼쪽 측면에서 후면 아래로 옮겨가면서 액세서리 탈부착 방식도 바뀌었다. 새로운 ‘스마트 키보드 폴리오’는 아이패드 프로 앞면과 뒷면을 보호한다. 케이스 장사를 하던 서드파티 업체들이 싫어할 디자인이다. 화면 각도는 두 가지로 변경할 수 있다. 각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서피스’ 시리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종이접기 시절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또 무릎 위에서도 더 안정감 있게 타자를 할 수 있다. 키보드 바닥도 스웨이드 재질에서 변경돼 이물질이 묻을 걱정을 덜게 됐다. 키감은 똑같이 얕다.

아이패드 프로는 자기 충전 방식의 애플펜슬, 앞뒤로 탈부착하는 액세서리를 도입하면서 102개의 자석이 내장됐다. 덕분에 여기저기 제품이 찰떡같이 잘 달라붙는다. 이를테면 스마트 냉장고로 활용할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새로운 액세서리는 부채꼴 충전, 종이접기 등 애플답지 않은 군더더기를 빼는 방식으로 개선됐다.

| 숨겨진 스마트 냉장고 기능

| 부채꼴 충전은 더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패드

베젤리스 디자인으로 12.9인치 모델의 활용성 확대, 그래픽 성능 개선, USB-C 타입 도입. 이 세 가지가 가르키는 건 결국 생산성이다. 특히 그래픽 분야 전문가를 겨냥하고 있다. 아이패드 프로의 성능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리소스 자원을 많이 잡아먹는 그래픽 분야 외엔 마땅치 않다. 실제로 애플은 어도비와 협업해 2019년에 ‘포토샵 CC’를 내놓을 예정이다. PC용 포토샵 기능을 모두 담은 앱이다. 애플은 전문가용 기기로서 아이패드 프로 시리즈의 정체성을 지속해서 강화하고 있다. 콘텐츠 소비용으로만 쓰기엔 아이패드 프로는 실용품보단 사치품에 가깝다.

아이패드 프로의 문제는 아이패드라는 점이다. X박스급 성능과 USB-C를 갖춰도 아이패드 프로는 여전히 아이패드다. 콘솔 게임기급 성능을 갖춰도 콘솔 게임이 애플 앱스토어로 나오진 않는다. USB-C 단자를 갖췄지만 저장 장치를 연결할 순 없다. 성능을 온전히 활용할 콘텐츠도 부재하고, iOS의 폐쇄적 생태계에서 오는 한계도 명확하다. 예를 들어 사진 편집 작업을 할 때 카메라나 SD카드 리더기로 불러온 사진은 사진 앱에 먼저 저장된다. iOS의 샌드박스 구조 탓에 각각의 사진 편집 앱에서 따로 사진 파일을 가져와야 한다. JPEG와 로우 형식으로 동시에 찍은 파일은 둘을 분리해서 저장할 수도 없다. 워크플로우가 늘어나는 셈이다.

| 콘텐츠 소비용으로 쓰기엔 아이패드 프로의 성능은 사치다.

애플은 지속해서 아이패드의 멀티태스크 기능을 강화하고 있지만, iOS의 폐쇄적 구조를 벗어나긴 힘들다. ‘iOS11’에서 파일 앱을 추가해 샌드박스 구조의 한계를 벗어나려 했지만, 자유롭게 파일을 이동하는 PC에 미치진 못한다. 모바일 사용 편의성과 PC의 생산성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애플의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이패드 프로 3세대는 찬란한 디자인과 기술을 담았지만, 여전히 아이패드다. 생각보다 많은 걸 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걸 할 수 없다. 아이패드는 아직 스마트폰과 PC의 중간에서 답을 찾고 있는 과정에 있다.

장점

  • 마법의 유리판 같은 디자인
  • X박스급 그래픽 성능
  • USB-C의 확장성
  • 개선된 액세서리 사용 편의성
  • 숨겨진 스마트 냉장고 기능

단점

  • iOS의 한계
  • 성능을 다 써먹지 못함
  • 반쪽짜리 USB-C 지원
  • 비쌈

추천 대상
아이패드 프로에 만족하던 프로

from Bloter.net http://www.bloter.net/archives/327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