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목숨 걸고 폭발물 처리해도 ‘비정규직 신세’ – 수다피플

해고문자 받았을 때가 설날 전이었어요. 본가에 가려고 비행기 표 예약을 다 했는데… 가족들한테 이야기도 못 하고…

곽OO / 전 제주국제공항 EOD 요원

곽 씨는 10년 가까이 제주공항에서 일했다. 용역 업체 소속 폭발물처리반(EOD) 요원으로 활동하며 대테러 업무를 수행했다. 목숨을 걸며 일했고, 한국공항공사 소속 EOD 요원과 마찬가지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업무를 했고 같은 교육을 받았다. 정규직이 담당하는 행정 업무도 처리했다. 하지만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에서 3분의 1 수준이었다.

고용불안에도 시달렸다. 곽 씨가 근무하는 동안 소속 용역 업체는 4번이나 바뀌었다. 업체가 바뀔 때마다 제대로 된 면담도 해본 적이 없었다. 계약도 대부분 1년 단위로 맺어졌다. 하는 일은 항상 똑같았지만 사장님만 계속 바뀐 셈이다. 곽 씨는 자신을 “비정규직 요원”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2016년 기준 한국공항공사 정규직 EOD 요원은 6명. 나머지 전국 공항에 배치된 20여 명의 EOD 요원은 곽 씨처럼 모두 용역업체 소속이었다. 한국공항공사는 지난 2006년을 끝으로 10년 가까이 정규직 EOD 요원을 뽑지 않았다.

▲공항 폭발물처리반(EOD)의 훈련 모습. EOD는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운영돼 왔다.

사실상 자신을 관리하고 사용한 곳은 용역 업체가 아닌 공항공사라고 생각한 곽 씨. 그는 지난 2016년 12월 한국공항공사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냈다. 곽 씨는 용역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했지만 제주공항에서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수행했고, 용역업체가 아닌 공항공사의 명령과 감독 등을 받았다며 공항공사와 자신의 관계가 파견 근로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 근무 시간과 장소, 휴가 등 근무 조건에 관해서도 공항공사의 직접적인 관리를 받은 점, 업무 관련 장비와 물품 등을 공항공사로부터 제공받은 점 등을 근거로 공항공사가 자신을 직접 고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파견법에 따르면 사용 사업주가 파견 근로자를 2년 이상 사용할 경우 직접 고용해야 한다. 백신옥 변호사(곽 씨 담당 변호인)는 애초에 EOD가 간접고용 형태로 이뤄지면 안 되는 직종이라고 말했다.

(정규직과 비교했을 때) 낮은 임금에 휴가도 제대로 못쓰고. 아파도 제대로 쉴 수 없고 휴식이 보장되지 않아서 집중력이 낮아질 수밖에 없죠. EOD 업무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실제 상황에서) 실수라도 하면 공항, 승객들 다수의 사람한테 끔찍한 결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이 있죠. 애초에 간접고용 형태로 이뤄지면 안 되는 직종입니다. 근로자 파견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임시로 다른 용역 업체에 맡겨서 근로하게 하는 것입니다.

백신옥 변호사 / 곽 씨 담당 변호인

소송을 내고 한 달여 뒤인 2017년 1월 20일. 곽 씨는 용역 업체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공항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해고 방식도 잔인했다. 업체는 10년 가까이 일한 곽 씨에게 ‘문자’로 해고를 통보했다. 수시로 바뀌는 업체는 ‘노동자에 대한 존중’이 필요없었다.

▲공항공사 EOD요원 곽 씨는 2017년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해고문자 받았을 때가 설날 전이었어요. 본가에 가려고 비행기 표 예약을 다 했는데… 가족들한테 이야기도 못 하고…

곽OO / 전 제주국제공항 EOD 요원

업무 미달도 아니었고 특별히 잘못한 일도 없었다. 경위서 한 번 쓴 적 없던 곽 씨는 제주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그러자 용역 업체는 곽 씨를 ‘사상이 불순한 자’로 몰아갔다. 업체는 지난해 5월 제주도지방노동위원회에 곽 씨가 ‘PC에 저장된 자료 등을 무단 삭제해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고, 사상이 불순한 자에 해당한다’며 해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공항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해고가 된 곽 씨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비정규직으로 채용됐지만, 소송 중이라는 이유로 정규직 채용에 응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노동위원회가 열리자 업체는 부랴부랴 다시 곽 씨를 채용한다. 당시 용역업체와 공항공사의 계약 기간은 2017년 12월까지. 곽 씨는 “부당해고가 인정되면 업체에 패널티가 가기 때문에 6개월만 다시 채용한 것 아니었겠느냐”고 말했다. 곽 씨는 이후 한 달 짜리 계약서를 계속 갱신하며 6개월 동안 일 한 뒤 10년 가까이 몸담았던 공항을 나왔다. 공항공사는 그해 11월 EOD 요원 정규직 채용을 실시했지만 곽 씨는 소송 중인 탓에 응시할 수 없었다.

내부 문제제기 했지만 내부고발 유출

곽 씨는 공항공사에서 마지막 6개월 동안 일하며 공항 내 취약한 보안 문제를 국민권익위원회에 알렸다. 그는 지난해 8월 국민신문고를 통해 보안 검색요원과 항공 경비요원이 폭발물 흔적 탐지 장비와 액체 폭발물 탐지 장비를 사용하며 교육을 받지 않고 있다고 신고했다. 국가민간항공보안 교육훈련지침에 따르면 보안 검색요원과 항공 경비요원은 인증된 교육기관에서 사용자 교육을 이수한 뒤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내부 직원이기에 제기할 수 있었던 문제였다.

하지만 신고 내용은 곧바로 유출됐다. 곽 씨가 권익위에 제보한 바로 다음날 공항에서 근무하던 동료가 곽 씨의 신고 내용을 그대로 곽 씨에게 카카오톡을 통해 보내왔다. 신상정보는 없었지만 신고 내용이 그대로 캡처돼 유출된 것이었다. 동료의 메시지는 ‘네가 신고한 거지?’라고 묻는 의미였다. 알고 보니 국토교통부 소속 제주지방항공청 관계자가 신고 내용을 휴대폰으로 촬영해 공항공사에 넘긴 것이었다.

제주지방항공청 근무하시는 분도 저를 알고, 어차피 (제주) EOD 요원은 3명밖에 없으니까. 제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저를 아니까 다 얘기했을 거라는 생각밖에 안 드는 거예요. 불안할 수밖에 없죠. 신분을 비공개해서 공익제보를 하라고 했는데, 신원이 다 유출된 것처럼 (내용이) 그렇게 돌아다니는데…

곽OO / 전 제주국제공항 EOD 요원

곽 씨는 제보 유출은 공익신고자보호법 위반이라며 권익위에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권익위는 ‘본인 동의 없이 유출된 사실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신고 내용이 법률상 공익 침해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곽 씨의 신분 공개 경위 확인 요구를 기각했다.

▲곽 씨가 국민권익위에 신고한 내용이 국토교통부를 거치면서 그대로 유출돼 자신에게 돌아왔다.

곽 씨는 “다수가 이용하는 공항에서 보안이 잘못되면 대형 인명 피해가 갈 수 있다. 그런데 이 자체를 공익 신고 대상이 아니라고 하면, 전문가가 그런 문제도 제기하지 못하면 말이 안 되는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소송과 내부 고발 과정을 거치며 곽 씨에게 남은 건 국가 기관에 대한 배신감과 주위의 따가운 눈초리뿐.

제주지방법원은 지난해 10월 한국공항공사가 곽 씨를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다며 곽 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폭발물 처리 업무가 공항공사 사업에 계속 필요한 점, 공사 직원과 용역 업체 요원이 함께 교육·훈련 등을 받은 점, 곽 씨가 공사 직원에게 지휘·감독 등을 받고 업무를 수행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법원이 공항공사 근로자 파견 문제에 대해 위법성을 인정하고 직접 고용 판결을 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공항공사는 항소했고 곽 씨는 또다시 재판을 준비 중이다. 곽 씨와 함께 일했던 일부 동료들은 현재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취재 : 문준영
촬영 : 최형석
편집 : 박서영
CG: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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