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포럼] 실리콘밸리를 그리는 사람들 ① – 수다피플

실리콘밸리는 수많은 혁신이 시작되는 곳이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전 세계를 변화시키는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이곳에서 출발해 뿌리를 내렸다. 이들의 성장은 실리콘밸리를 꿈의 무대로 만들었다. 창고에서 시작해도 세계를 뒤흔들 만큼 성장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실리콘밸리 스토리는 여기까지다. ‘인재들이 모이고, 혁신이 만들어지고, 기업문화가 좋다더라’에 관한 이야기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 외의 깊숙한 이야기가 알려지지 못했다. 때문에 한국 청년들에게 실리콘밸리는 그저 높은 장벽으로 비쳤다. ‘도대체 얼마나 똑똑해야 될까’ 같은 짐작만 하게 했다. 사실 지금 실리콘밸리가 구축해놓은 환경은 그들만의 필사적인 생존 전략일 뿐인데 말이다.

실리콘밸리의 일상을 살아가는 6명의 한국인이 모였다.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팀이다. 실리콘밸리를 꿈꾸는 청년들을 위한 멘토를 자처했다. 이곳에서 일하고, 살고, 가정을 이루며 경험한 것들을 모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실리콘밸리를 더 많은 사람들이 가깝게 여기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미국 현지에서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멤버들을 만났다. 한 멤버의 가정에 초대받아 저녁 식사를 하며 나눈 이야기를 ‘블로터포럼’으로 정리했다.

  • 일시 : 2018년 3월13일 오후 7시
  • 장소 : 미국 캘리포니아 샌머테이오에 위치한 윌(Will)과 에린(Erin)의 집
  • 참석 :
    • 에이든(Aiden) : 엔지니어링 매니저. 레드우드 쇼어 지역에 있는 회사에서 일함. 데이터 수집을 통한 프로세스 개선에 관심이 많음.
    • 칠리(Chili) : 디자이너. 마운틴 뷰 지역에 있는 회사에서 일함. 생각을 그림으로 요약하는 데 관심이 많음.
    • 에린(Erin) : EA(Executive Assistant). 사우스 샌프란시스코 지역 바이오테크 회사에서 일하고 있음. 조직 문화, 커뮤니케이션, 워킹맘 관련 정보에 관심이 많음.
    • 사라(Sarah) : IPO 재무회계 컨설턴트. 산타클라라 지역에 있는 회사에서 일함. 실리콘밸리식 스타트업 자본 구조와 주식 보상 제도에 관심이 많음.
    • (Will) :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샌프란시스코 SOMA(South of Market Area) 지역에 있는 회사에서 일함. 기업 문화와 조직에 관심이 많음.
    • 6번째 멤버인 크리스틴(Christine)이 아쉽게도 일정상 참여하지 못함. 그는 벌링게임 지역에 있는 회사에서 일하며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십을 담당하고 있다. 모바일, 클라우드 서비스에 많은 경험이 있으며 조직의 다양성, 성장형 마인드셋, 여성 CEO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다.

이날 ‘블로터포럼’에 함께한 사람들.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 우승자와 기자, ‘실리콘밸리를 그리다’팀이 모였다. (왼쪽 위부터) 김병훈, 곽효원, 사라, 에린, 반려견 루루, 칠리, (아래) 권도연, 윌, 에이든

다양한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담아내기 위해 총 2부로 나눠 정리했다. 1부에선 직무·채용·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2부에선 평가 시스템·이직·스타트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직무

‘실리콘밸리를 그리다’는 어떻게 모이게 된 팀인가? 여섯명이 직업이 다 다르다는 점도 신기하다.

칠리 : 대학교 동문들이다. 한국에서는 몰랐고 미국에 와서 알게 된 사이다. 같은 영문학과를 나와도 누구는 엔지니어하고, 디자이너하고 등등 다 다른 일을 하고 있다.

: 실리콘밸리는 대부분 엔지니어들인데, 재밌게도 이렇게 모였다. 엔지니어 직군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고, 에이든은 엔지니어링 매니저다. 나는 실제로 엔지니어링을 하며 회사에 코드를 제공하는 사람이라면, 에이든은 엔지니어들이 서로 팀 안에서 잘 기여할 수 있도록 서포트해주는 역할이다.

PM(Product Manager)을 비롯해서 직군마다 매니저 롤이 있는 게 한국과는 조금 다른 개념 같다. 어떤 일을 맡게 되나.

: 팀 안에서 효율이 잘 날 수 있도록 팀원들을 서포트 해주는 역할이다. 팀장이랑은 또 다르다. 각자의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이랄까. 연예인 매니저랑도 비슷한 것 같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대신 해결해주고, 잘하는 부분을 더 빛나게 해주고, 서로 역할을 조절해주기도 하고.

칠리 : 연예인 매니저 같다는 비유가 적절하다. 큰 회사 같은 경우 사람이 되게 많으니까 밖으로 보여지는 성과도 중요한데, 이 사람을 어떻게 하면 더 돋보이게 할까를 함께 고민해준다. 발표할 자리를 만들어주고 그런다.

에린 : 새로운 직원이 오면 그 팀 매니저가 연락이 온다. 우리 이 사람 새로 왔으니까 임원이랑 만나보게 시간 좀 마련해달라고 한다. 임원들은 또 일정이 너무 많지만 꼭 만나본다. 이런 식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떤 일을 맡고 있고,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서로 연결시켜줄 수 있는 역할이다.

개인을 돋보이게 하는 롤이 따로 있다니 신기하다. 한국에서 흔한 직무는 아닌 것 같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자연스러운 역할인가?

: 다 있다. 매니저가 없으면 안 된다. 매니저가 여기선 승진이 아니다. 이 사람은 지금 일보다 사람을 다루는 스킬이 있고 리더십이 있구나 싶으면 맡기는 거다. 공부를 못해도 피플 스킬(people skill)이 있으면 회사 전체를 잘 굴러가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에린 : 매니저들은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잘 배분한다. ‘내가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어’라고 말하면 작더라도 성취감 있는 프로젝트를 그 직원에게 나눠준다. ‘이런 거 한번 해볼래?’라고 작은 프로젝트부터 시작해서 점점 잘하게 성장시키는 게 매니저의 능력이다.

에이든 : 매니저는 어려운 일이다.(에이든은 매니저다)

사라 : 매니저는 내가 내 시간을 써서 이 사람을 키워야 되는 거다. 정말 신경 쓰는 게 많은 일이다. 나도 한두 명 매니지 하다가 일곱 명까지 팀이 확 늘어난 적이 있는데 몇달동안 너무 고생했다.

EA(Executive Assistant)의 역할도 궁금하다. 어떤 일을 하게 되고, 어떤 점이 다른가.

에린 : 실리콘밸리에서 EA(Executive Assistant)는 원래 생각하던 비서의 역할과는 다르다는 걸 많이 느꼈다. 내가 만들어준 스케줄대로 임원들이 움직이는 방식이다. 그들의 일정을 매니징하는 전문 역할이다.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

사라 : 여기서 임원들의 시간은 완전히 회사의 자산이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임원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날 수 없다. 같이 미팅 약속을 잡더라도 ‘오케이. 근데 우리 EA한테 얘기해야 해’.라고 한다. 시간 잡을 때는 허락을 맡아야 하는 개념이다.

에린 : 임원들은 자기 캘린더를 관리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절대 마음대로 스케줄을 잡지 못한다. EA는 일을 체계화 잘 시키고, 디테일한 걸 정확하게 보고, 캘린더링 잘하고, 여러 가지 사무 앱 잘 쓰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뽑는다.

#채용

실리콘밸리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을 뽑는가? 천재들만 뽑을 것 같다는 인식이 있다.

: 일단 능력 있는 사람을 뽑는 건 맞다. 근데 그 능력이라는 게 모든 영역에서 1등을 뽑아서 어디 가서 어떤 일을 하라고 하는 게 아니다. 대신 모두가 동등한 상태에서 역할에 대한 전문가를 뽑는다. CEO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전문가라면, 디자이너는 디자인의 전문가를 뽑고, EA는 매니징을 잘하는 전문가를 뽑는 거다. 후임을 뽑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채도 아니다. 필요한 역할에 맞는 사람을 리크루터들이 링크드인을 뒤진다. 맞다 싶으면 데려와서 면접을 하는 거다.

칠리 : 그리고 핏(fit)이 맞는 사람을 데려간다. 컬추럴 핏(cultural fit)이라고 하는데 같은 능력이라도 회사에 대한 핏, 팀에 대한 핏이 맞는 사람을 찾는다.

: 같은 직무여도 회사별로 문화적 핏이 다르다. 구글, 페이스북, 에어비앤비, 트위터 다 다르다. 예를 들면 수학, 과학적으로 되게 뛰어난 사람들은 구글에 가는 거고, 친절하고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에 관심 있으면 에어비앤비를 선택하는 거고, 빠르게 해피하게 일하는 걸 좋아하면 페이스북을 가고 하는 식이다.

에린 : 컬추럴 핏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 회사가 나랑 문화가 안 맞으면 일하기도 싫고 재미도 없어지는 거다. 모두가 즐겁게 일하는 곳이어야 하는데 안 맞으면 안 되지 않나. 인성이 어떤지 보자 이런 게 아니다. 부서마다 도 컬추럴 핏이 다르다. 면접 볼 때 나랑 같이 일을 할 사람들이 와서 면접을 본다. 서로 문화적 핏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다.

채용 면접도 궁금하다. 능력은 어떻게 보고, 핏은 어떻게 따지나.

칠리 : 면접을 정말 하루 종일 본다. 1대1 인터뷰를 5, 6명을 거치며 한다. 나는 한 방에 앉아있고 차례로 들어와서 45분 인터뷰하고 5분 쉬고 하는 방식이다. 완전히 내 직군에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직군의 사람들도 면접에 꼭 들어온다. 교차기능(cross functional)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의 경우에는 몇십명 앞에서 내 포트폴리오와 디자인챌린지라고 숙제를 발표하는 시간도 있다.

: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에린 : 속일 수 없다. 일관성 있게 대답하는지를 본다. 그리고 여기서 인터뷰는 일방적인 평가가 아니다. 상호평가다.

칠리 : 맞다. 인터뷰 하다 보면 내가 회사를 인터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에린 : 인터뷰 할 때 이런 거 직접 물어보기도 한다. ‘나는 이런 걸 하고 싶은데 이 회사는 이런 거 키워줄 수 있니?’ ‘당신은 이 회사의 CEO인데 이 회사의 비전이 뭔가’라고 솔직하게 묻는다. 물어보다 보면 이 회사랑 맞는지 아닌지, 여기서 일하고 싶은지 느낌이 온다.

구직자로서의 태도도 자연스럽게 달라질 것 같다. 대학생활까지 모두 한국에서 나왔는데, 적응하기 힘들지 않나?

에린 : 적응 어려웠다. 실리콘밸리에서 처음 면접을 볼 때 ‘뭐든지 시키는 일은 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면접관들이 그런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좋겠다는 피드백을 줬다. 그건 너의 열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너의 능력을 남용하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하더라. 자기들은 그런 걸로 너를 평가하지 않고, 그건 너의 스킬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고 하더라.

칠리 : 무조건 열심히만 하는 사람은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다.

에린 : 면접 여러 번 보고 나니까 나도 다르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아예 내가 어떻게 일할 건지 주도적으로 설명했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이날 먹은 피자는 정말 맛있었다.

#문화

입사 후에 실제로 느끼는 기업 문화도 많이 다른가. 미국 안에서도 실리콘밸리는 더 다른지 궁금하다.

사라 : 한국, 미국 동부, 미국 서부에서 모두 일해봤다. 한국과 미국 동부 쪽이 확실히 타이트하다. 제일 크게 다른 건 시간 활용이다. 실리콘밸리는 확실히 시간 활용을 굉장히 유연하게 한다. 대신 일과 여가시간 확실히 분리한다. 주의사항 중 하나가 메일링 시간이다. 주말이나 근무시간 이후에 메일 보내는 것 싫어해서 일부러 예약메일 걸어놓는다.

에린 : 처음 출근하고 첫날, 둘째 날까지 밤 10시까지 일했다. 그랬더니 다음날 임원이 저를 불러서 그렇게 일하지 말라고 하더라. 다른 사람들도 네가 이메일 보냈을 때 늦어도 답장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기니까 애초에 그런 문화를 만들지 말라고 하더라.

에이든 : 신입사원이 왔을 때 딱히 할 일이 없어 보이는데 안 가고 있으면 ‘나중에 어떡하려고 그러지?’라고 생각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가 맡아야 할 역할은 점점 커진다.

자기 욕심껏 더 남아서 일하고 싶어 할 수도 있지 않나. 처음에는 적응하고 배우는 시간도 필요하고.

칠리 : 여기는 무조건 ‘워크 스마트(work smart)’다. 스마트하게 최대한 효율적으로 리소스 적게 쓰면서 하는 걸 중요시한다.

에린 : 맞다. 여기는 이메일도 구구절절 쓰는 것 안 좋아한다. 본론만 딱 쓴다.

사라 : 이 동네에 오니까 매니저들이 아래 직급 사람이 집에 안 가고 남는 걸 싫어하는 게 이해가 되더라. 남아있으면 관리를 해야 한다. 우리 회사 같은 경우는 고참 순서대로 집에 늦게 간다. 아래 시니어들이 안 가고 있으면 ‘내가 뭘 안 끝내줘서 못 가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고 신경 쓰인다.

에이든 : 아래 직급 사람이 안 가고 남아있는데 내가 집에 먼저 간 걸 다른 매니저가 보는 게 눈치 보이는 일이다.

사라 : 내가 그 직원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잘 분배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건 내가 잘 못해서인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매니저가 리소스 관리를 못한 책임으로 보인다니. 흥미롭다.

에린 : ‘바쁘다’라는 말을 입밖에 계속 꺼내는 건 프로페셔널하지 못해 보인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매니저들이 있다. ‘안 힘들어? 일이 너무 많아?’라고 계속해서 물어본다. 업무 상태를 계속 물어보고 능력에 맞게 조정하는 거다. 8시간짜리 일을 10시간 걸려서 하고 있으면 매니지먼트가 잘못됐다는 거다.

에이든 : 늦게까지 일한다는 건 그만큼 트레이닝도 안 됐다는 거다.

퇴근 시간을 능력치랑 연관시키는 것도 신선하다. 그럼 실리콘밸리 내 문화도 궁금하다. 다들 여기서 일하고 가정을 꾸리며 정착하신 분들이다. 라이프 사이클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시나. 특히 맞벌이 부부께 궁금하다.

: 여성이 양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개념이 없다. 누군가 희생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되어있다. 일하는 동안엔 데이케어 보내고, 일 끝나면 데리고 와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거다. 어차피 저녁에 아무도 안 놀아 준다.

에이든 : 아이를 픽업할 시간만 서로 조율해서 플랜을 짜면 되는 거다.

사라 : 여기는 라이프사이클이 되게 단순하다. ‘재미없는 천국’과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비교한다면 여기는 정말 전자다. 항상 9시 출근해서 5시30분이면 집에 온다.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애들 보기가 쉽다.

칠리 : 회식에 준하는 팀 빌딩 활동은 낮에 한다. 대신 재밌는 액티비티로 한다.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가거나 도자기를 만들기도 하고. 출산휴가도 얼마 전 우리 회사는 12주에서 16주가 됐다. 아빠건 엄마건 상관없다. 근데 웃긴 건 출산휴가 사이에 능력치를 엄청 늘려서 이직을 한다. 쉬면서 인터뷰 준비하고 해서 완전히 능력치가 업그레이드되어서 나타난다.

에린 : 반려견에 대해서도 대체로 프렌들리하다. 지금 매일 회사에 반려견과 출근하고 있다.

일 이외의 것들에 회사도 지원을 잘 해주는지?

: 물론이다. 운동 중요시한다. 우리 회사에 이번 동계 올림픽 스케이트 국가대표 선발에 마지막 단계까지 갔다 온 사람도 있다.

에린 : 동료가 철인삼종경기 하려고 회사를 2주 쉬었다. 다이어트부터 시작해서 몸을 만들어야 하니까. 근데 그런 거 다 회사에서 지원해준다. 그렇게 해줘야 즐거워서 일도 잘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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