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를 막아라!”…전두환 정권의 ‘동분서주’ 기록들 – 수다피플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제 요구가 분출하던 지난 1986년과 1987년, 전두환 정권 외무부를 비롯한 다수 행정부처들이 뉴욕타임즈에 잇달아 실린 외국인들의 정권 비판 기고문들에 대응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정황이 기밀 해제된 30년 전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외교라인을 총동원해 뉴욕타임즈와 미국 정부에 압박과 항의를 전하는가 하면, 법무부와 문교부 등을 통해 국내에 거주 중이던 외국인 기고자에 대한 직접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 비판’ NYT 기고문 항의에 외교라인 총동원

필리핀의 마르코스 장기독재가 시민 궐기 종식된 1986년 초. 한국에서도 야당과 민주화운동 세력을 중심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가 거세지고 있었다.

그러던 1986년 4월 2일, 뉴욕타임즈에 엘살바도르 대사를 지냈던 미국 외교관 로버트 화이트의 기고문이 게재됐다. ‘서울을 향한 과도한 수줍음’이라는 제목의 이 기고문은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소개하고 이에 대응하는 미국 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기고자는, 한국에서 대통령 직선제 요구가 들끓기 시작했지만 전두환 정권은 재야 인사와 학생운동 지도부, 노조 운동가들에 대한 구금과 고문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함께 실린 삽화 속에는 이같은 한국의 상황이 표현됐다. 이어서, 미국 정부는 곧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야당 정치인 김영삼과 김대중은 물론, 문익환 목사와 김수환 추기경 등 재야 종교지도자들과도 적극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 기고문이 실린 지 이틀 뒤부터 한국 외무부가 황급히 움직인 내용이 외교문서 속에서 포착됐다. 4월 4일 외무부는 뉴욕총영사관에 공문을 보내 뉴욕타임즈에 항의서한을 보낼 것을 지시했다. 현지 교민을 섭외해 항의서한을 쓰도록 하라는 지시 내용도 담겨 있었다. 뉴욕 총영사관은 이 지시를 즉각 이행한 뒤 외무부에 보고했다.

같은날 외무부는 주미대사관에도 지시 공문을 보냈다. 뉴욕타임즈의 삽화가 우방국인 한국의 국기를 모독한 것이라는 점을 미 국무성 관리에게 전달해 주의를 환기시키라는 내용이었다. 한 마디로 미 정부를 통해 뉴욕타임즈에 압력을 가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주미대사관 참사관이 미 국무성 관리에게 이같은 항의를 표명하자 미국 측은 “정부가 언론에 영향을 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응답을 내놓았고, 주미대사관은 이를 그대로 외무부에 보고했다.

10개월 뒤인 1987년 2월 23일, 뉴욕타임즈에 또 하나의 한국 관련 기고문이 실렸다. 당시는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으로 정국이 소용돌이치던 때였다.

기고문을 보낸 사람은 에드워드 포이트라스라는 미국인 목사로, 당시 서울의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박대인이라는 한국 이름의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그는 기고문을 통해 전두환 정권의 폭력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한국민들이 직접선거를 통해 전두환 정권을 축출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도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또 다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외교부는 황급히 주미대사관에 대책 마련을 지시했고, 주미대사관은 즉각 뉴욕타임즈 논설주관과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게 항의한 뒤 그 내용을 외무부에 보고했다.

외무부는 또 주한 미대사관에도 뉴욕타임즈 기고문 문제에 대해 항의했는데, 이번에도 돌아온 반응은 ‘언론 보도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치는 한계가 있음을 이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박대인 목사 직접 압박’에 행정부처 총동원

외교라인을 통해 미국 언론의 비판 기사를 막아내는데 한계를 느낀 전두환 정권은, 아예 기고자인 박대인 목사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에 들어갔다. 이를 위해 청와대와 안기부, 외무부, 법무부, 문교부, 문공부 등 관련 부처를 총동원해 대책회의를 갖고 압박 전략을 세워 실행했다. 여기엔 박 목사의 한국 체류기간 연장을 불허하는 방안, 즉 추방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었다.

이에 따라 법무부 서울출입국관리소장은 박대인 목사를 불러 뉴욕타임즈에 기고문을 보낸 행위에 대한 문책을 시도했다. 그러나 박 목사는 “미국 사람의 눈으로 본 한국 사정을 미국인에게 알리려고 한 것일 뿐”이며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또 “만약 한국 정부가 신상에 대한 조치를 취한다면 그냥 당하지 않고 할 수 있는데까지 싸우겠다”고 대응했다.

그러자 정부는 “박 목사의 비자 연장을 불허할 경우 극단적인 반한인사로 만들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일단 체류기간을 6개월 연장해주고 동태를 파악하기로 결정하고 만다.

문교부는 감리교신학대 학장을 압박해 박 목사에게 인사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압박책을 실행했다. 당시 송길섭 감신대 학장은 일단 “외국인의 정치적 발언 관여는 곤란한 일이 맞다”고 맞장구를 치며 “알아서 조치하겠다”고 답했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징계 조치도 취하지 않고 오히려 박 목사를 보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적인 민주화 요구를 폭력으로 억누르고 있던 1987년의 전두환 정권. 그 같은 현실을 어떻게든 세계로 알리려 노력했던 외국인들이 있었는가 하면 반대로 어떻게든 이를 막아내려고 동분서주 했던 공무원들이 공존하고 있던 시대였다. 이들 가운데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에 기여했던 건 어느 쪽이었을까.

영상취재 : 김기철, 김남범, 신영철
영상편집 : 이선영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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